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슬리 맥네어 (문단 편집) === 견인식 대전차포 선호 === 이 사람은 [[대전차 자주포]]보다 [[견인포|견인식]]의 [[대전차포]]를 선호했기에 [[M10 GMC]]의 배치를 줄이고 [[3인치 M5 대전차포]]의 배치를 늘리려고 했다. 여기서부터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 기초적인 군사 지식상 대전차포는 '''어딘가에 미리 방열하여''' 방어선을 형성하거나 매복하고 기습하는 수비적인 무기체계인데 '''미군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격자였다.''' 그러나 틀렸다고만 할수 없는게 M10 울버린이 장비한 3인치 포[* 1918년에 나온 구식 대전차포였기 때문에 성능에 비해 무겁고 컸다. 때문에 이 포를 경량화하여 전차 장착형을 만들어 셔먼과 헬캣에 장착한다.]는 [[5호 전차 판터|판터]]나 [[6호 전차 티거|티거]]를 상대로 하기에는 좀 부족했던 게 현실이니, 더 강력한 대전차포가 미군에 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M5 대전차포는 다름아닌 M10이 장비한 3인치 포를 M2 [[105mm 견인곡사포]] 포가에 얹어 만든 물건이었다. 즉 [[다운그레이드]]인 물건. 독일군의 [[8,8cm FlaK]]이나 영국군의 [[17파운더]]에 맞먹는 물건을 원했던 일선 장병들에게 '''다운그레이드'''된 대전차병기를 건네준 것이다! 물론 [[17파운더]]도 초기형은 25파운더 야포의 포가를 이용했지만 그건 아직 포가가 개발되지 않아서 임시로 야포 포가와 결합한 것이며, 곧 전용포가가 개발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장 M5 대전차포는 1문당 견인차량과 그 운전병을 포함해서 10명 가까운 필수인원이 필요했다. M10 울버린이 5명의 승무원으로 운용되는 것과 비교하면 더 불편해진 셈이고, 이 때문에 일선부대는 M5 대전차포의 배치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플래툰 2011년 7월호와 8월호에 이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맥네어를 가리켜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상관"이라며 마구 깠다. 게다가 M5는 원래 포가가 105mm 야포인 만큼 대전차포로서는 지나치게 자세가 높고 크며 무거워서 매복 및 위장도 힘들고, 유사시 접근하는 적에게 포신을 돌리기도 힘겨웠다. 게다가 견인식 대전차포 자체는 이미 2차대전 초기부터 방어전에서나 기용하는 무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위력은 좋으나 무겁고 방열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방어력은 0에 가깝기 때문에 적 전차가 보병과 같이 합동작전을 펼치면 추풍낙엽처럼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이 많았던 것. 독일이나 소련이 견인식 대전차포도 많이 쓴 이유는 돈과 물자가 딸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대가는 현장에서 병사들의 시산혈해로 돌아왔다. 물론 소련군은 참호를 파서 대전차포만 노출시키고 대전차포 운용병을 엄폐시켜 안전하게 장전하고 사격하는 포진지를 건설하고 주변에 호위용 보병참호를 꾸미는 팍 프론트(Pak Front)전술로 사상자를 줄였다. 거기에 지원용으로 쏟아지는 [[카츄샤 다연장로켓|스탈린의 오르간]]과 122mm, 152mm, 203mm 야포들은 덤이었다. 이건 독일군도 비슷하게 실행했으므로 제대로 진지를 건축하고 매복한다면 그렇게까지 불리하지는 않았으련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미군은 공격자다.''' 미군의 유럽전선이란 폭격만 미친듯이 한 다음 상륙해서 독일으로 무한전진!이었는데 이런 공격전에선 대전차 자주포도 유용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견인식 대전차포는 그야말로 무쓸모한 물건이었다. 대전차 자주포도 재빨리 대응해야 겨우 동수를 이루는게 대전차전인데, 견인중이던 대전차포를 견인차에서 끌어내고 방열하여 전개하는건 촉박한 전투중엔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소모된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적하고 눈 마주친 다음에 탄창에 탄환을 삽탄하고 장전한후 쏘라는 말이다. 그럼 이미 결과는 전멸 아니면 다른 병과가 적을 격퇴한 이후가 된다. 더군다나 독일 중전차들의 주요 전략은 정직한 전면전도 가끔 있었지만 보통은 미군이나 영연방군, [[자유 프랑스군]]이나 [[자유 폴란드군]] 등의 연합군의 기갑중대/호송대 대열을 기습하여 탈탈 털고 항공대가 오기 전에 도주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독일 중전차에 의해 대전차포와 조작요원이 통째로 그냥 갈려버린다. 사실 1940년 맥네어는 프랑스 전역의 전훈을 바탕으로 견인식 대전차포를 퇴출시켰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튀니지 메드닌 전투에서 6파운드 대전차포가 괄목할만한 전과를 올렸다는 영국군 보고서에 주목하여 견인식 대전차포의 재도입을 주장했다. 이에 일부 일선 지휘관들을 비롯한 반대파는 견인식이 공간(포외에 견인차량까지 포함하면 수송선내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훨씬 커진다)을 더 많이 차지하고 트럭을 사용해야 하기에 보급을 위한 추가 트럭을 배치해야 하며, 방호력과 대응능력도 떨어지고, 필요인원도 훨씬 많아진다고 반대했지만, 맥네어 장군이 '''[[높으신 분]]'''이었기에 버틸 수가 없었다. 이는 사막이라는 개방된 곳에서 6파운더를 막아낼 방호력이 없는 3, 4호 전차가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지형이 전차에게 불리한 상황에서의 활약이였다. 하지만 M5 견인식 대전차포가 활약할 유럽은 시가지와 보카주 지형 등이 많아 전차가 몸을 숨기기 좋고 상대도 5, 6호 전차로 훨씬 방호력이 좋았다. 물론 전차만 숨으란 법은 없으므로 M5도 이동 중이던 티거 편대를 발견해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물론 참전병의 회고이지만 미군은 모든 전차를 '티거'라고 보고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미군은 어쩔 수 없이 견인식 대전차포를 배치해야 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부터 [[아르덴 대공세]]에 이르기까지 미군 대전차포 부대는 '''[[그냥 시체]]'''가 되었다. 예를 들어 아르덴 대공세 때는 독일군의 공격을 한번만 받은 경우라도 대전차포 부대가 모든 견인식 대전차포를 방기 및 망실하여 그냥 보병부대로 전락해버린 경우까지 있었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좋은 경우이고, [[대전차 자주포]]를 장비한 부대의 몇 배나 되는 사상자를 내는 게 일상이었다. 참다 못한 지휘관들이 M5 대전차포를 '''그냥 야포'''로 취급해서 보병지원용으로 써먹을 정도이니 설명이 필요한가? 나중에 [[90mm 대전차포]]가 개발되긴 하지만, [[대공포]]인 물건을 만능포화해서 배치한데다가 확실하게 연합군이 제공권을 잡는 바람에 대공포 부대가 할 일이 없어서 대전차전도 할 때 주로 사용한 경우며, 성능은 좋았지만 대전차포 부대가 주력으로 쓰기에는 무겁고 복잡해서 제대로 보급되지도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